
김훈의 문장은 단단하고 거칠다. 거침없는 필력 속에는 남성적인 강인함이 배어 있으며, 고도로 정제된 언어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머무르며 살아가는 힘없는 인간 군상을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묘사한다. 『공무도하』를 펼치면 거센 강바람이 몰아치는 듯한 감각과 함께, 인간의 숙명적인 고독이 강물처럼 흐른다. 이 작품은 소설가이자 기자로 오래 살아온 김훈이 기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손끝으로 풀어낸 삶의 기록이다. 무심한 풍경 속에 자리한 인간들의 비루한 일상이 그의 간결하고 날카로운 문장에 담겨 그려진다.
제목 ‘공무도하(公無渡河)’는 고대 가요에서 유래한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뜻이지만, 김훈의 소설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약육강식의 현실을 함께 견디자는 운명의 노래로 확장된다. 주인공 문정수는 전형적인 사건 담당 기자로, 의붓딸을 상습 성폭행한 친부를 살해한 아들, 개에 물려 숨진 초등학생의 엄마, 홍수피해로 인한 마을 간 폭력, 백화점 화재 때 보석류를 훔치고 낙향한 소방관같은 사건들을 취재하며 메마른 기사를 담담히 써 내려간다.
그러나 문정수는 정의를 외치는 영웅 기자가 아니다. 그는 구조적 악에 맞서려 하지 않고, 자신이 확인한 사실만을 기사로 기록한다. 개에게 물려 죽은 아이의 어머니를 수배하라는 상사의 요구에도 소극적으로 응하고, 화재 현장에서 억대 귀금속을 훔친 소방관을 알면서도 기사화하지 않는다. 나중에 그가 신부전증으로 불법 장기 이식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구조적 악에 맞서거나 진실을 폭로하기보다는, 자신이 확인한 현실을 건조한 어조로 기록하는 데 그친다. 이 담백함 속에서 오히려 인간을 향한 연민과 따뜻한 시선이 드러나며, 김훈 특유의 문학적 힘이 빛난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자신의 강을 건널 것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무엇을 남기고 떠나게 될까?"
『공무도하』는 소설이지만 마치 한편의 시(詩)처럼 독자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남긴다. 김훈의 문장은 돌에 새긴 비문처럼 오래도록 그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강은 흐르고, 삶은 계속된다.
책을 덮은 후, 어쩌면 우리 안에서도 조용히 흐르는 강물이 있을 것이다. 그 흐름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혹은 끝내 건너야 할 어떤 숙명을 말해주는지도 모른다. 흐르는 물은 시간의 상징이자 변화의 은유이며, 우리 삶에서 누구에게나 건너야 할 순간—곧 죽음 혹은 새로운 생의 경계이며, 인간이 현실에 뿌리내린 존재임을, 그리고 각자의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것인지를 묻는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원형의 상징으로 다가온다. 결국 우리는 모두 제 강을 건너는 존재로, 때로는 강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강 저편을 마주한 지금 이 순간 삶에서 얼마나 충만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지 긴 여운을 남긴다.
“약육강식은 모든 먹이의 기본 질서이고 거대한 비극이며 운명이다.
거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이 있다.
공무도하는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에서 함께 살자는 노래다.
나는 삶의 먹이사슬과 슬픔, 더러움, 비열함,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 것.”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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